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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더십인사이트

어느 리더에 대한 기억

by 김진영(에밀) 2022.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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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나는 전 직장의 상사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우리가 이번에 A 항공사에 큰 건을 제안하려고 하는데, 함께 해줬으면 좋겠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아마 김 팀장이 다 아는 사람들일 거야. 그러니 손발 맞추는 건 크게 염려 안 해도 될 거고."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수락했다. 

출근해보니 이미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각자 분야에서 제 몫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업무분장과 관련한 고민이 필요 없었다. 신나게 일했던 것 같다. 출근을 한 두 시간 일찍 했다. 일을 빨리하고 싶어서, 어제 다른 사람들의 결과물을 빨리 보고 싶어서.

제안서를 백 여건 써본 것 같은데 그중에서 손 꼽을 만한 수작이 나왔다. 하지만 최종 결선 평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항시 조직이 아니라 낙찰 후 운영할 요량이었기 때문에 팀은 쪼개지고 사람들은 다 뿔뿔이 흩어져서 퇴사했다. 나만 마지막까지 남아 정리 작업을 했다. 어느 날 우리 일을 극단적으로 적대시했던 부사장이 나를 불렀다.

"김 팀장, 자네가 하던 일이 그렇게 망가졌는데 월급을 그렇게 받을 수 있겠어?"

하루 아침에 내 월급 20%가 삭감됐다. 망연자실 자리에 있는데 사장님이 나를 찾았다. 

"부사장이 뭐라고 했어요?"

내 말을 듣고 난 사장님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더니 봉투에 담아 내게 건냈다.

"김 팀장, 미안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는 없네요."

대표실을 나오는 길에 봉투 위로 뭔가 뚝뚝 떨어졌다. 그건 내 자존심의 흔적이었다. 감사의 마음이었다.

※ 당시 대표는 재벌가 2세로 본인의 실적을 입증해서 후계 구도를 굳히려는 입장이었고, 부사장은 대표를 견제하는 처가 측 인사였다. 우리는 대표의 라인으로 만들어진 별동대 같은 조직이었는데 성취하려던 단 하나의 프로젝트가 어그러지면서 팀은 해체되게 되었다.

사실 나를 불러 들인 예전 상사나 대표가 우리가 했던 제안 작업에 내용 측면에서 기여한 바는 없었다. 그저 서포터로의 역할을 했었다. 한참 제안서 마무리를 하던 날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10시가 넘은 시간에 양 손에 치킨 봉투를 들고 사무실로 찾아 와줬던 상사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리더는 당연히 일에 대한 전문성이 필수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 경험을 해보니 따뜻한 마음만 있어도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이 된다. 반대로 전문성만 있고, 가슴이 차가운 리더보다 휠씬 낫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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