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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부장의事記

3-2. 추락

by 김진영(에밀) 202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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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는 TF 총괄을 박 상무에게 맡긴다는 황망한 지시를 내린 후 어두운 낯빛으로 회의실을 급히 떠났다. 잠시 어수선한 좌중을 박 상무가 깨뜨린다.

“우리 말이야, 30분 정도 쉬었다 TF 회의 진행합시다. 여기 모인 모두가 TF 팀원이니까 어디 가지 마시고들!”

의기양양한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회의실 밖에서 이 팀장(김 부장의 직속 전략1팀장)이 빠르게 들어와 박 상무에게 다가간다. 사뭇 심각한 표정의 두 사람은 한편으로 비켜선 채 대화하고 있다.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그의 말투, 이 팀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거슬렸지만 김 부장은 우선 대표실로 향했다.

비서는 김 부장을 막아선다.

“부장님, 대표님께서 오늘 일정 모두 취소하셨습니다. 다음에 오시는 게…”

“박 비서, 미안하지만 지금 봬야겠어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김 부장을 본 대표는 비서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한다.

후계 구도의 변화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차분한 성격의 김 부장이 버럭 같이 소리를 치니, 대표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다.

“이렇게 결정하시면 회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개혁의 대상이 될 사람이 칼자루를 쥐다니요!”

“김 부장, 기분 좀 가라앉히고 우선 앉게.”

대표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응접 소파 뒤로 가서 술 한 병을 가져왔다.

두 술잔에 가득 술을 따른 후 김 부장 쪽에 하나를 놓더니 본인 것을 먼저 끝까지 들이킨다.

‘아… 대표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김 부장도 혼란스러운 정신을 쓴 독주 한 잔을 단번에 마셔버린다.

“휴우… “

대표의 긴 한숨이 터져 나온다.

“어디서부터 얘길 해야 하나... 일전에 그룹 후계자로 유력한 O 상무 말했었지?”

“네, 그러셨죠.”

“김 부장도 O 상무 형은 알고 있지?”

“△ 전무 말씀이죠? 그분은 후계 구도에서 아주 멀어졌다고 들었는데요.”

“그랬지...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랬었지...”

대표는 멍하니 한동안 말이 없다. 그사이 김 부장은 ‘△ 전무’에 대해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큰아들로 별일이 없으면 후계자가 될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약 전과에 연예인과의 추문 등으로 회장의 눈 밖에 나게 된 지 꽤 오래됐다고 했다. 다만, 사업적인 수완은 있었는지, 자기 주도로 런칭한 패션 브랜드 몇 개가 크게 성공을 거둬서 전무 자리를 겨우 유지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 ‘△ 전무’가 나오는 걸까?

“회장님이 아직 장남에 대해서 기대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야. 그룹 내부에는 분명 차남인 O 상무를 정했다고 선언하고 후계 작업까지 지시했었는데 말이야.”

대표는 다시 술잔을 채운다.

“아마 사돈가인 B 그룹 영향이 있는 것 같아. 몇 년 전에 장남이 후계를 맡았잖아. 알겠지만 그 양반도 △ 전무 못지않은 망나니였어. 근데 부회장이 되고 나서 사람이 변했다고 하데. 그룹 실적도 호전되고 말이야. 그걸 옆에서 보니까 회장님도 장남에 대한 미련이 생겼던 거지.”

“아무리 그래도 이제 그룹 비서실 사람들은 O 상무 쪽 아니었나요?”

“그게 말이야.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 △ 전무에 대해 재평가가 있었나 봐. 성질은 그래도 실적을 직접 내긴 했으니까. O 상무야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지. 공부만 많이 한 샌님이란 이미지가 있고, 지금 같은 위기 국면에선 △ 전무가 적격이란 분위기가 돌았나 봐.”

“김 부장, 비서실 사람들은 그저 회장님의 심중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야. 갈대 같이 이리저리 움직인다고. 그게 인지상정이잖아. 문제는 그 의중을 아주 완벽하게 들켜버렸다는 거지. 그러니 급속도로 △ 전무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고 하데.”

“O 상무하고 친하시잖아요. 연락 안 해보셨습니까?”

“해봤지. 겨우 연락이 됐는데, 참담하더라고. 결국 회장님 뜻대로 갈 거야. 지금은 O 상무 쪽은 가능성이 30%가 안 돼. 본인도 알고 있고. 아마 나도 연임하지 못할 거야.”

“그룹은 그렇다고 해도 우리 회사 구조조정을 박 상무에게 맡기시다니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김 부장, 나도 새로 안 사실이 있는데 말이야…”

대표가 머뭇거릴 때, 비서의 음성이 인터폰을 통해 들린다.

“죄송합니다. 저... 김 부장님, 회의실에서 박 상무님께서 찾으신다고 합니다.”

‘아, 벌써 30분이 되었나?’

“김 부장, 우선 가봐. 긴 얘긴 다음 하도록 하지. 내가 내일부터는 지방 출장이야. 그러니 다음 주에 보자고.”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김 부장의 발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있었다.

TF에서 밀려나다

“야! 김 부장! 내가 30분 후에 보자고 했는데, 꾸물거리다 이제 오냐!”

박 상무의 면박이 회의실로 들어서는 김 부장을 맞는다.

“죄송합니다. 대표님하고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대표는 무슨… “

혼잣말같이 박 상무가 한쪽 뺨을 실룩거리며 나불거린다.

“이 팀장, 갖고 온 자료 나눠줘.”

이 팀장이 문건을 참석자들에게 배포한다. 제목은 ‘구조조정 TF 구성(안)’이다.

문건을 받아 본 김 부장은 어질어질해졌다.

‘박 상무, 이 인간은 이걸 다 알고 있었구나. 미리 다 준비했어. 실무는 이 팀장이 진행했겠구만.’

이 팀장은 애써 김 부장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자자, TF 일정이랑 활동계획은 특별한 게 없고, 확정되지 않았으니까 돌아들 가셔서 보시고, 4페이지를 보

세요. 거기 조직개편(안)이 있어요.”

“아니, TF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조직개편입니까?”

CTO(최고기술책임자) 도 상무가 묻는다.

“도 상무, 어차피 구조조정을 해야 하니까 조직개편부터 하려고 해요. 그래야 세팅된 상태에서 실행할 거 아닙니까? 경험상 조직개편을 나중에 하면 뒷말 나오고 잘 안 돼요. 그러니 선 조직개편, 후 구조조정, 이런 식으로 진행할 겁니다. 이제 설명할께요.”

'흠... 이미 조직은 자기 맘대로 정해놨다는 말인데...'

“우선 TF 실무책임자는 이 팀장이 맡습니다. 우리 사업에 정통하니까 역할을 잘해줄 겁니다."

"에.. 그리고..."

박 상무는 김 부장을 찡끗 흘겨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존재 자체가 이상했던 ‘전략기획실’은 오늘부로 폐지합니다. 앞으론 ‘신사업기획팀’으로 전환합니다. 팀장은 김 부장이고요.”

“예? 상무님, 무…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박 상무는 김 부장을 한심한 듯 쳐다보면서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힌 자세로 입맛을 다셔가며 느릿느릿 말한다.

“그러셔? 그럼 내가 '두 번째'로, '정확히', 얘기해줄게. 당신은 이제 전략기획실장이 아니야. 신사업기획'팀장님'이시라고. 그러니까 당신은 TF 멤버가 아닌 거지. 담부턴 TF 회의에 오지 마. 당신 팀원은 최 팀장하고 채 과장 둘이야. 아, 최 팀장은 이제 팀장 아니겠네.”

“구조조정 시기에 신사업기획을 한다는 건 이해 못 하겠습니다.”

“당신이 이해하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야. 대표님하고 다 얘기된 거니까 따르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나가봐도 좋아.”

그렇게 김 부장은 TF에서 배제됐다. 이제는 실장이 아니다. 자리로 돌아온 김 부장은 박 상무보다 이 팀장이 더 야속했다.

‘이 팀장이 이상하게 행동했던 이유가 이거였군. 박 상무 사람으로 움직였던 거야. 그래, 사업부서에서 직속 상사였던 인연이 참 질기구먼.’

복잡한 생각에 넋 놓고 있는데, 대표의 문자가 온다.

(3화 예고)
https://leadersclub.tistory.com/127

TF에서 배제된 김 부장은 혼란한 마음을 가다듬는다. 대표와 함께 외부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일에 착수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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